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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정의 차이
어제 살펴본 사무엘 1장과 오늘 본문 사무엘 2장 전반부에는 사무엘의 가정, 다시 말해서 한나의 가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장 중간부터는 엘리의 가정을 기록합니다.
엘리의 가정은 한나의 가정과 여러모로 차이가 나는 가정입니다.
여러 가지 차이가 있지만
그중 가장 큰 차이는 두 가정이/ 특별히 자녀들이 영적, 신앙적으로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먼저 12절에 제사장 가문의 아들들, 엘리 가정의 홉니와 비느하스에 대해서 기록합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
반면 26절에 한나의 아들 사무엘에 대해서 기록을 합니다.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제사장 가정의 자녀는 불량자입니다. 그러나 평범한 가정의 아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습니다.
이 두 가정의 자녀들은 25절과 34절을 보면 결말이 엄청나게 차이가 남을 보게 됩니다.
2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엘리 가정의 불량한 두 아들을 죽이기로 결심하셨다고 기록합니다.
게다가 34절을 보면 한날 한시에 죽이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정말 엄청난 차이 아닙니까?
어떻게 두 가정의 자녀들이 이렇게 차이가 날 수 있는 것입니까?
오늘은 이 본문의 말씀을 가지고 이 두가정이 어떻게 이처럼 차이가 날 수 있는가를 살피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래서 말씀의 제목이 “두 가정의 차이”입니다. 따라합시다. “두 가정의 차이”
1. 먼저 두 가정의 가장 큰 차이점은 어머니들에게 있습니다. (1절 상반절)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엘리의 가정에 대해서 기록하면서 성경은 그 어머니에 대해서 단 한절도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모르긴 몰라도 홉니와 비느하스의 어머니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성경에 기록할 만한 어떤 일을 행한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반면 사무엘의 가정은 처음 시작해서 마칠 때가지 어머니 한나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나의 불임으로 인한 슬픔과 고통 그리고 한나가 그것을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해결했는가 하는 것을 집중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1장 2장은 한나의 기도하는 모습과 기도의 내용을 아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녀가 잘 되고, 하나님의 위대한 종으로 세워지기 위해서
그 가정의 어머니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위대한 신앙의 가정은 그냥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종은 그냥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종 사무엘 뒤에는 한나라고 하는 위대한 신앙의 어머니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어거스틴은 위대한 신학자입니다. 삼위일체 이론의 기초를 만든 사람입니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젊어서 매우 방탕한 생활을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처럼 방탕한 어거스틴이 위대한 신학자가 될 수 있었겠습니까?
방탕한 어거스틴 뒤에 눈물로 기도하는 어머니 모니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는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믿습니까?
만약 우리들의 자녀가 우리들의 마음에 흡족하지 않다면
그것은 분명 부모된 우리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 만약 홉니와 비느하스같은 불량한 자녀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기도하지 않은 까닭임을 알아야 합니다.
왜 엘리의 아들들이 바르게 성장하지 못한 것입니까?
그 어머니가 기도하지 않았고 어머니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왜 사무엘은 위대한 하나님의 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까?
그것은 한나가 기도한 까닭이요, 어머니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한 까닭인줄 믿습니다.
못난 자식은 없습니다. 못난 부모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시간 간절히 부탁을 드립니다.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녀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한나와 같은 어머니, 모니카와 같은 어머니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일전에 제가 심방을 가서 이런 설교를 했더니 그 어머니께서 “나는 정말 간절히 아들을 위해서 기도했는데 왜 우리 아들은 변화가 없습니까? 내가 잘못 기도했습니까?”면서 반문을 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해도 쉽게 변화되지 않는 자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들은 속 많이 썩이는 자녀를 위해 더 많이 기도하게 됩니다. 속 많이 썩이는 자녀가 효도 많이 하는 자녀입니다. 왜요? 어머니로 하여금 무릎 꿇고 기도하게 하니까?
그리고 나중에 그 자녀가 더 많이 효도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어머니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2. 또 하나의 차이점은 자녀를 양육하는 방법의 차이입니다.
(11,18,21 <--> 12,15,17)
두 가정의 부모들이 어떻게 양육을 했기에 사무엘은 위대한 하나님의 종으로 성장하고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로 성장한 것일까요?
11절 - 여호와를 섬기니라
18절 - 여호와 앞에서 섬겼더라
21절 -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여기서 우리는 여호와 앞에서 섬겼다는 말에 집중해야 합니다.
여기서 여호와를 섬겼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사무엘은 어려서부터 실로에 있는 성막에서 성장을 했습니다.
어린 사무엘이 엘리를 도우며 생활한 것입니다. 그럼 사무엘은 엘리의 어떤 일을 도왔을까요?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엘리의 제사 즉, 예배를 도왔던 것입니다.
결국 사무엘은 젖을 떼면서부터 하나님께 예배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젖을 때면서부터 제사 중심, 예배 중심의 생활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엘가나와 한나의 자녀 양육 방법입니다.
17절을 보면 엘리의 아들들은 제사를 멸시 했다 기록을 합니다.
제사를 멸시했다는 말은 예배를 멸시했다는 것입니다.
예배를 멸시 했다는 말은 결국 하나님을 멸시한 것입니다.
제사를 집례하는 제사장이 자신의 아들들에게 바르게 제사하는 법을 가르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를 멸시하고 하나님을 멸시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30절에서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한 자를 내가 경멸이 여기리라]
하나님을 멸시하고 예배를 멸시한 자를 하나님도 그를 경멸히 여기겠다는 것입니다.
한나의 가정과 엘리의 가정의 엄청난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시간 제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들 자녀의 미래가 예배생활에 달려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자녀들이 예배에 성공하면 만사에 성공하게 될 줄 믿습니다.
예배에 성공하는 자녀들로 양육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은 어떻게 자녀들는 키우시겠습니까?
홉니와 비느하스입니까? 아니면 사무엘입니까?
사무엘처럼 키우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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