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함께/성경통독

요한계시록 일곱 교회 – 라오디게아(Laodicea)

한마음 새생각 큰믿음 2020. 8. 24. 11:12

라오디게아 교회

라오디게아는 대니즐리(Danizli)와 파묵칼레(Pamukkale) 사이에 나지막한 언덕위에 있다.  들판을 따라  걸어 올라가다 보면 연무장, 경기장, 극장들 그리고 공공건물들이 거의 다  허물어져 빛바란 채 흩어져 있어 휑한 바람소리만 들려온다.   이곳은 기원전 3세기에 안티오쿠스 2세(Antiochus II, 261-246 BC)가 자신의 아내인 라오디케 (Laodice)에게 경의를 표하여 그녀의 이름으로 지명을 삼았다.  이 도시는 사방으로 어디든지 잘 연결될 수 있어서 주요 군사와 무역 도로로써의 역활을 했었다.  한때 아시아의 수도라고 불리울 만큼 금융과 무역이 활발했던 상업 중심 도시여서 커다란 유대인 지역이 형성되어 있었고 지진(AD 60)이 난 후에도 자체의 힘으로 복원할 수 있던 재력을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기원전 50년에 로마의 정치가이자 철학자인 키케로 (Marcus T. Cicero, 106-43 BC)가   라오디게아에서 200명의 하인들을 거느리고 1 년간 살았다고 한다.

 

기원후1세기때 지리학자였던 스트라보(Strabo) 의 기록에 의하면 라오디게아는 양질의 검고 부드러운 양털로 유명했다고 한다.   또한 서쪽으로 약 20km 떨어진 곳에는 의과대학이 있었다고 한다.   버가모의 유명한 철학자이자 의사였던 갈렌(Galen, Claudius 129-199 AD)에 의하면 기원 후 2세기까지 오직 라오디게아에서만 생산되는 방향성 식물로 귀를 튼튼하게 만드는 약이 조제되었다고 한다.  갈렌은 또한  안약 산지로 유명했던 라오디게아는 프리지안 돌(Phrygian Stone)로 만든 가루를 필요한 부분에 펴서 바르는 안약이 눈병 치료로 널리 사용되었다고 묘사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le, 384-322 BC)도 프리지안 돌을 안약으로 언급하였다고 한다.

 

여행 중 그곳 사람들에게 지금도 여전히 전해 내려온다는 사도 바울에 대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들었다.  바울이 긴 전도 여행중 하루는  라오디게아에 도착해서 어느 여인숙에 묵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비싼 값을 치루었음에도 불구하고 방에는 벌레들이 득시글거려  몹시 불쾌해진 바울은 밖에 나가라고 했다.  다음날 아침 바울이 방문을 열어보니 모두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라오디게아에서 19km 떨어져 있어 골짜기 하나만 건너면 되고 희끄므레하게 바라다 보이는 곳에 파묵칼레 (Pamukkale)라는 곳이 있다.  석회질이 많은 온천수가 언덕을 따라 아래로 흐르면서 희고 반짝이는 종유석과  구혈을 만들며 작은 폭포를 이루어 동화의 나라에 온듯한 착각이 들 정도인데 매우 환상적이어서 목화성 (Cotton Castle)이라고도 부른다.  이 물은 눈과 피부에 좋다고 하며 또한 관절염과  천식 또는 피부염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그 근처에 있는 파묵칼레 호텔에는 사설 수영장(the Secret Pool)이 있다.  로마시대에 무너져 내린 대리석 기둥들과 유적들이 바닥에 그대로 남아있어 온천수에 몸을 담그기도 하고 마치 물고기처럼 기둥들 사이로 수영도 하면서 옛 시대로의 회귀에 잠시 들뜨게 한다.  로마의 황제들도 치료를 위해 이곳을 찿았다고 한다.  키케로도 이곳에서 서사시와 연설문을 썼다고 한다.

파묵칼레에는 비밀의 도시 (Secret City 또는 City of Hiera)라고 부르던  히에라폴리스 (Hierapolis, 3C BC-9C AD)의 유적들이 1 마일가량  뻗쳐있다.  히에라폴리스는 버가모의 유메네스 2세에 의해 세워졌으며 아탈루스 2세의 유언으로 로마가 지배하게 되었다.  기원 후 17년에 지진으로 무너졌다가 곧 재건되었으며 기원 후 2-3세기에는 아주 융성하였다.   이곳에는 아폴로 신전이 있고 냉온탕이 있는 로마 목욕탕이 있는데 목욕탕은 조금 복원되어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15,000명 수용할 수 있는 로마 극장과 거대한 공동묘지가 있다.  이곳에 말기 환자들이 치료차 왔다가  돌아가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커다란 석관들이 구릉을 따라 약 1,200여개나 길게 줄지어 늘어서 있어 소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방대한 고대 공동묘지이기도 하다.  몇몇 봉분에는 돌로 만든 남근을 올려놓은 것을 볼 수 있었는데 그것은 다산을 기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곳에서 좀 더 올라가다 보면 고고학자들이 발굴하였던 십자형의 건물이 있는데 사도 빌립(Apostle Philip)의 순교 기념 교회라고 한다.  사도 빌립의 무덤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는데 예루살렘의 박해를 피해서 사도들이 뿔뿔이 흩어진 후 빌립은 이곳에서 살았다고 하며 기원 후 80년에 여기서 그의 네 딸들과 함께 순교 당하였다고 한다.

라오디게아에서 남동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골로새(Colossae)는 기원전 5 세기에 활발했던 도시였는데 라오디게아가  형성되면서 기원전 1 세기때 부터 골로새의 중요성을 잃게 되었다.  지진 (AD 60)으로 근처에 있던 라오디게아와 히에라폴리스와 함께 폐허가 되었었다.  그 후 7~8 세기부터 아랍의 침입으로 압박을 받아 차차 기울다가 비쟌틴과 셀쥭의 싸움이 일어났던 곳이다.  바울이 골로새 교회에 편지 (AD 60 또는 AD 65)를 보낼 때는 번잡한 도시였는데  현재의 골로새는  형태를 알아볼 수 있는 극장과 몇몇 건물들만 남아있고 아직 발굴되지 않아 사람들의 방문이 별로 없다고 한다.  언덕위에 숲으로 덮여있어 그냥 나지막한 산같아 보였다.

 

라오디게아는 근처에 있는 히에라폴리스와 골로새에서 물을 끌어다 사용했다.  지금도 토관으로 만든 수도관을 돌로 감싸서 연결된 옛 수로들을 볼 수 있다.  그 당시의 물은 거세고 순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물이 흘렀던 수도관엔 오랜 세월동안 쌓였던 침전물이 두껍게 끼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히에라폴리스의 물은 뜨거웠고 골로새의 물은 차거웠다고 한다.  그러나 수도관을 통해서 흘러오는 동안 미지근해졌다.

 

요한이 받은 계시에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하여 “아멘이신 분이시요, 신실하시고 참되신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처음이신 분이 말씀하신다.  나는 네 행위를 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겠다.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내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  너는 풍족하여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다고 하지만, 실상 너는, 네가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어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나는 네게 권한다.  네가 부유하게 되려거든 불에 정련한 금을 내게서 사고, 네 벌거벗은 수치를 가려 드러내지 않으려거든 흰 옷을 사서 입고, 네 눈이 밝아지려거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라.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책망도 하고 징계도 한다….” 라고 말하고 있다. 라오디게아의 물처럼 미적지근해진 사람들에게  안약을 사서 바르고 영의 눈을 뜨라고 한다.  불에 정련된 금을 사라고 하고 책망과 징계를 한다고 하는데 과연 안전과 축복과 부귀만을 원하는 현대인들에게 얼마나  현실로 받아들이고 싶을런지 모르겠다.

 

라오디게아 교회 유적지 표지판.

 

출처: http://myyoon.com/web_new/?p=4798

에서 가져와 일부 편집한 글 입니다.